출산의 기억 (3) The baby and I

출산의 기억 (2)

나름 고통에 대한 참을성은 어느정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람들이 아프다고 하는 내진도 별로 문제 없었고 해서, 그런 오만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악소리 나게 아팠던 건 정말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졌을 때도, 놀이기구에서 장난치다가 머리를 다쳐서 대여섯바늘 꿰매야 할때도 아프긴 해었다.
하지만, 진통의 무서운 점은 그 악소리 나는 아픔이 주기적으로 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진통측정기를 보고 있으면, 초단위보다 정확하게 언제쯤 그 악소리나는 고통이 밀려들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긴장이 된달까. 

처음에는 이를 악물고 참을 수 있을 정도였지만, 가면 갈 수록 심해져서 나중에는 진통이 가장 심할때는 정말 숨을 잠시 멈추고 이불시트를 꽉 잡아당기면서 겨우겨우 넘길 수 있는 정도였다. 
새벽무렵쯤에는 진통이 너무 심해서 잠을 이를 수가 없었다. 숨을 멈추면서까지 참을 정도라면, 과연 참는게 맞는걸까 싶기도 했다. 
결국 새벽 1시쯤 간호사에게 고통을 호소했더니, 한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더니 진통제를 놔 주겠단다.
단지 이 진통제는 아기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주 놓을 수 없다고 한다.
새벽무렵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인지, 주문한 진통제가 병실에 배달되기까지는 건 몇 시간이 걸렸다.

그 진통제의 효과는 아직까지 기억한다.
진통제가 돌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한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진통제가 뇌를 순간적으로 마비시키는 게 느껴지면서, 숨이 쉬어지지 않더라.
뭐랄까, 숨을 쉬는 근육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달까.
나는 당황해서 '숨을 쉴 수 없어요'라고 외치고, 간호사랑 친구는 '계속 숨을 쉬세요'라고 응원하고.
다행히 그 순간은 몇 초 만에 지나갔지만, 한순간 정말 무서웠다.

어쨋튼 강력한 진통제떄문에 어느정도 진통의 고통은 누그러졌다.
아주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시하고 쪽잠을 청할만큼은 되었다.
덕분에 쪽잠이나마 2-3시간정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진통제 기운이 사라진 탓인지 다시 고통스럽고 주기적인 진통이 몰려왔다.
문제는 아직 자궁구가 반도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한 몇시간 진통을 참다가, 너무 힘들어서 다시 진통제를 요청했다.
그렇지만, 의사선생님들은 그런 강력한 진통제를 너무 자주 맞는건 태아에게 좋지 않다고 하며, 요청을 거부하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선생님들의 의견이 달라졌다.
언젠가부터 내 진통이 최고점을 달할때 마다, 아기의 심박동이 느려지는 것이 관찰된 것이다.
태아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 의사선생님들은 유도분만을 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옥시토신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무통분만을 할건지 묻길래 나는 한다고 대답했다.
그 전날밤, 진통이 오기 전에 마취의사가 에피두럴에 대해 질문사항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해서, 이것저것 물어본 결과, 딱히 부작용이 크지 않다는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무통분만에 대해서는 육아밸리에서 많이 읽어봤지만, 진통제가 들어가는 순간 거의 80%의 진통이 사라졌다.
무서울 정도의 효과였다.

그때 즈음, 지구를 반바퀴 이상 돌아서 남편이 도착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수염도 못 깎아서 나보다 더 힘든 모습을 하고 나타난 남편 앞에서 고통으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여유가 없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문득 했다.
내 주치의 선생님도 그때 나를 방문했다.
내가 불시적으로 입원을 한 데다가 아직 출산이 한달 반도 더 남았기 때문에, 주치의 선생님께 연락가는 게 늦었던 모양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옥시토신을 넣고서도 한참 기다릴 지도 모르니까, 아직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정말 아기를 받고 싶었는데, 한 시간 뒤면 퇴근이라 아마 힘들겠네요'
라며 아쉽다고 말씀하시던 주치의 선생님은 가기 전에 한번 체크해보자며, 내 복부를 덮고 있던 이불 속을 들여다 보셨다.
남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때 이미 이불 밑이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고 아기의 머리가 살짝 보였다고 한다.

그때부턴 정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정말 몇 분도 안되어서, 주치의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이것저것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어리버리 있는 동안 침대도 변형시켜서, 정말 '앗?'하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이미 분만자세에 들어가 있었다.

무통분만에 대해 염려하는 이유들 중 하나가 고통이 너무 없어서 언제 힘을 줘야 하는지 알기 힘들기 때문도 있었던 것 같다.
사람 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고통의 강도가 매우 미미할 뿐, 진통을 오는 것을 느끼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옆에 모니터를 보면 파형이 보이기 때문에, 그걸 보고 힘을 줘도 된다.)

33주 4일째인 아기는 아무래도 작은 편이었다.
한번 숨을 들이쉬고 두번 힘을 주는 걸 딱 세번 하고 나서, 거짓말처럼 아기가 태어났다.
막 태어난 아기는 생각보다 작았고, 생각보다 깨끗했다. (왠지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을거란 생각을 했는데.)
아기는 혼자 숨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듯이 울어댔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작은 아기. 
그렇게, 남편이 돌아온지 2시간만에 우리는 미르와 첫 만남을 가졌다.

덧글

  • 윤윤 2017/05/15 04:09 # 답글

    남편분이 타이밍을 맞추셔서 다행이예요 :)
  • Vitia 2017/05/15 11:18 #

    안 그래도 비행기값 내고 평생 우려먹을 이야기거리 얻었다고 이야기하곤 해요. 그렇게 난리치고도 못 볼 수도 있었으니까, 정말 어떻게 타이밍이 맞아서 다행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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