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 기억 (2) The baby and I

출산의 기억 (1)

출산의 순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주 대충정도는 육아밸리에서 읽어서 알고 있었다.
병원에서 아기 돌보는 법, 라마즈 호흡법 (마취없이 출산할 경우), 출산에 관련된 지식 등등 4-5가지 수업을 공짜로 제공해 주는데, 그 수업들을 다 33주-34주째 되는 때에 잡아놓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라마즈 호흡법이란 게 있다는 건 알지만 어떻게 하는지 몰랐고, 양수가 언젠간 터지는 건 알았지만, 정확하게 언제 터지는 건지는 몰랐다.
육아밸리에서 읽기로는 보통 양수 터지면 거의 출산에 임박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하는 정도의 느낌?
'유부녀의 탄생'의 환타님의 경우도 양수가 먼저 터진 경우라, 웹툰을 보며 진통이 오기 전에 양수가 먼저 터지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만, 내 경우에는 환타님처럼 후두둑 떨어지는 느낌이 아니라, 시작부터 왕창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깜짝 놀랐다기보다는 '와- 이게 양수가 터지는 거구나'하는 멍한 느낌이 더 강했다.
나이 서른 넘어서 오줌보를 전혀 조정하지 못하고 막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두렵다기보다 좀 황당하달까 웃기달까.

헐래벌래 화장실에 가서 닦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왠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다행히도 남편 친구 전화번호는 찾기 쉬운 장소에 놔뒀었고, 남편친구는 신호음이 한번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양수가 터져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지금 와 줄 수 있겠니?"

친구는 막 출근을 한 참이었다.
친구의 직장은 우리 집에서 차로 5 분 내의 거리다.

"지금 갈게."

라고 바로 대답을 듣고, 나는 챙겨뒀던 가방을 들었다. 
이런 친구를 둔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시계를 봤더니 딱 남편의 발표가 있는 세션이 끝날 무렵이었다.
친구는 거의 5분내에 집에 도착했고, 병원으로 가는 동안 나는 남편에게 문자를 넣었다.

"헤이, 남편. 발표는 잘 했어?"

남편은 방금 발표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는 길이랬다. 
사람들이 질문도 하고해서, 분위기가 좋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남편이 무슨 표정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폭탄같은 뉴스를 알렸다.

남편은 당장 여행사와 연락을 하고, 비행기표를 알아본 다음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나중의 이야기로는 꽤 패닉에 빠졌던 모양이었다. 불쌍한 남편. 

병원에 도착해서도 걷는 내내 양수가 다리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생리패드를 하긴했는데, 전혀 쓸모가 없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양수가 흐르는 게 느껴지니, 마음은 다급한데 빨리 걸으려니 더 많이 흘러내릴 것 같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출산 병동에 도착했다.

수속하는 데스크 앞에 도착해서 나름 다급하게 '양수가 터져서 왔어요'라고 말했으나, 데스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아주 여유롭게 '알았으니까 좀 기다리세요'라고 말했다. 
하필이면 환자들이 많이 몰려와서 체크하는 병실의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는 응급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의 반응을 받으니 황당했지만, 기다리라는데 어쩌겠는가.
화가 나고 짜증이 나기도 해서 거의 오기로 그냥 서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금새 남편 친구가 주차장에 차를 넣고 돌아왔다.
친구가 다시 데스크의 사람에게 상황을 물어봤으나, 빈 병실이 없어서 좀 기다리라는 말 뿐이었다.

다행히도 지나가던 간호사가 이야기를 듣고는, 서 있지 말고 옆에 있는 휠체어에라도 앉아 있으라 해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양수는 이제 봇물처럼 흘러나오진 않아도, 쉼새없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마정도 기다렸을까, 간호사가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한다.
병실이 없어서 데스크 안쪽의 작은 공간에 커튼을 쳐 넣고, 일차 검사를 했다.
다행히 아기의 심박수도, 나의 바이탈도 별로 문제가 없었다.
그 순간 또 확 터져나오는 양수에 간호사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는 뭔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병실로 나를 안내했다.

입고 있는 옷을 다 벗고, 가운으로 갈아입은 후 침대에 누웠다. 
양수때문에 침대에 깔아놓은 시트는 금새 축축해져서 별로 편안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어쩌겠는가.

양수와 아이가 세균에 감염될 때는 대비해서 항생제를 맞고, 아기에게 계속 수분을 공급하기 위해 식염수를 맞았다.
그리고는 계속 아기와 나의 심박수, 그리고 진통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긴 관찰기가 시작되었다.
상태를 체크하러온 몇몇 의사선생님들은 양수가 먼저 터진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몇 주 더 임신을 지속시킨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에, 상황을 보면서 가능한한 출산을 미루자고 했다.
아기의 폐가 완전히 성숙되는 시기가 34주인데, 양수가 터진 시기가 33주째 되는 시기니까 최소 일주일은 미루자는 거였다.
물론 이미 양수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식염수를 주입해서 아이에게 수분을 공급해줘야 한다.
의사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29주때 양수가 터진 임산부를 40주까지 버티게 한 적도 있단다.

갑자기 비상사태 점등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때쯤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여행사를 통해서 알아봤을때, 가장 빨리 돌아올 수 있는 때는 다다음 날 오후고 개인적으로 알아봤을 때 가장 빨리 돌아올 수 있는 때는 다음 날 정오쯤이라고 한다. 다음 날 정오에 도착하려면, 문자 그대로 지금 짐 챙겨서 공항에 가야 하며, 런던에서 6시간인가 비행기를 기다려야 하는 나름 빡센 일정이었다. 물론 이런식으로 표를 바꾸기 위해선, 약 200만원정도 돈을 내야했다. 
결국은 남편이 좀 빡센 여행일정을 거쳐서라도 제일 빨리 돌아올 수 있는 비행기편을 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편은 학회장에서 호텔로 달려갔다. 앞으로 3-4시간 안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그 동안 남편의 친구분은 남편을 대신해서 나와 함께 있어주기로 했다.
진통이 살짝 느껴지긴 했지만 딱히 심한 정도가 아니라서, 나는 팀원에서 서류 작성 좀 해달라고 메일 보내고, 보스에게 현재 상황을 알렸다. 
이런 상황을 전혀 짐작도 못했을 보스와 실시간 이메일 대화를 나누며, 병실에 누워서 읽을 책들을 킨들에서 몇 권 사고 들어누웠다.

과연 얼마만큼이나 출산을 미룰 수 있을까?
의사선생님들도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 계속 병실에서 식염수를 맞으며 누워 있어야 한다는 거겠지. 
왠지 전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어쨋튼 왠지 느긋한 기분이 들어, 다운로드 받은 판타지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남편의 친구분은 그 동안 집에 가서 편안한 옷가지와 읽을 책들을 가져왔다.
집에 가도 된다고 말했지만,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자리를 지키겠다고 약속했다'며 병실에서 함께 자겠다고 한다. 
(오, 남편의 친구는 여자분이다.)
둘다 각자의 책을 읽으며 조용하게 시간을 보냈지만, 왠지 아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오후 쯤, 남편은 런던에 도착했다며 연락이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공항의 한 구석에서 6시간인가7시간을 보내야 한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런던의 공항은 딱히 연 가게도 없고 한산한 모양이었다. 남편은 잠이 안 온와서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렇게 세 사람이 각자의 책을 읽으며, 얼마만큼 지속될 지 모를 입원 생활의 시작이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출산은 왠지 의사선생님의 예측과는 언제나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기로 결정되어진 모양이었다.
저녁 무렵부터 상당히 극심한 진통이 3-5분의 주기로 찾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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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라비안로즈 2017/04/17 14:02 # 답글

    아기가 빨리 나오고 싶었나봐요. ^^
  • Vitia 2017/04/18 23:32 #

    그러게요. 단계단계마다 의사선생님들의 예상을 뛰어넘고 일찍 일찍 진행이 되었더랬어요. :)
  • sanChoiz 2017/04/17 15:05 # 답글

    아기가 나오는 과정은 정말 드라마틱한 부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 역시 아내가 출산했을 때 생각해보면 지금도 웃음이 나오네요... 무통 두번 맞고나서도 "무통주사 맞으면 안될까?" / "응 안돼" 이랬던 기억이 있어서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ㅋㅋ
  • Vitia 2017/04/18 23:33 #

    안 그래도 남편이랑 200만원 더 주고, 앞으로 3-40년간 우려먹을 이야기 소재를 샀다고 웃었더랬어요.
    그래도 비교적 건강하게 태어났으니 다행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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